🍇 송알송알 시작합니다 🍇

포도밭출판사 소식지 송알송알입니다. 

풍성한 이야기를 모아 전하는 소식지가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드는 소식지로 꾸리려는 바람이 있습니다. 

지난봄, 『오늘날의 애니미즘』의 편집을 최종 검토하던 기간에 나는 일본에 다녀왔다. 『정법안장』을 손에 들고 현장을 누볐다는 이와타 케이지를 어설프게 흉내 내듯 가방 속에는 언제나 번역 원고가 들어 있었다. 이런저런 풍경 속에서 문장들의 생기가 되살아나지 않을까? 나는 언젠가 처음 이 문장들이 태어났을 때 담겼을 진심을 더 생생하게 느끼고 싶었다. 그렇게 예상치 못한 폭우와의 조우 속에서, 후지산의 오래된 시선 속에서 나는 내내 ‘오늘날의 애니미즘’에 관해 생각했다. 그건 분명 이전까지 내가 알던 애니미즘은 아니었다. 

이전에 알았던 애니미즘은 나를 매료시켰지만 내게서 너무나 멀리 있었다. 나는 표범이 나의 친척이라 생각할 수 없었고, 적의 시선에서 나를 바라볼 수 없었다. 나는 그런 삶을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 벤치에 앉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순간을 기억한다. 나무의 전생을, 벤치의 마음을 잠시나마 엿본 것만 같은, 그러니까 잠시나마 유한성을 잊었던 그 순간. 그때는 그 감정을 무어라 명명할 수 없었지만, 이제 나는 그것이 애니미즘의 경험이었다는 것을 안다. 

『오늘날의 애니미즘』의 두 저자는 서구 인류학자들의 지적 야심 - 혹은 또 다른 소명 - 속에서 우리와 분리되었던 ‘애니미즘’을 다시 우리 앞으로 데려온다. 애니미즘은 하나의 경계를 가진 집단이나 시대 속에서 배태되는 특정한 존재론이 아니다. 더 이상 애니미즘을 발견하기 위해 아마존으로 모험을 떠날 필요가 없다. 애니미즘은 언제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든 열려 있는 순간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애니미즘은 ‘흙이 묻은 무’와 같다는 이와타의 말은 참으로 소박하다. 하지만 소박한 만큼 진심이 느껴진다. 

오쿠노 카츠미와 시미즈 다카시 두 저자는 이와타 케이지에게 기대고 있는데, 이와타에게 있어 애니미즘이란 그 무엇보다 ‘소중한 종교’였다. 이 책의 저자들은 다른 애니미즘 논자들과 달리 여전히 ‘신’에 대해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오늘날의 애니미즘을 넘어 오늘날의 종교, 오늘날의 철학에 대한 진지한 사색이기도 하다. 오쿠노 카츠미는 이와타 케이지의 말을 빌려 이렇게 전한다. ‘몇 번이고 새롭게 태어나는 세계에 가닿는 것’ 그것이야말로 애니미즘이라고. 한편 시미즈 다카시는 이렇게 말한다. 애니미즘의 경험이란 ‘한 개체가 또한 전 세계이기도 한 것에 대한 환희에 찬 긍정’이라고. 

이를 잠시라도 느낄 수 있다면, 그때 우리는 보이지 않는 세계와 함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서울대에서 인류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 대학에서 「무덤의 금기와 경계: 부산 비석문화마을의 형성과정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역사박물관의 서울생활문화 자료조사 『시흥동: 서울 서남부 전통과 현대의 중심』, 파주 중앙도서관의 역사민속문화 기록화 사업 『파주 DMZ의 오래된 미래, 장단』, 『장파리 마을 이야기』 등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느끼는 다양한 방식들에 관심을 두고 현재는 무덤의 기술과 사자(死者)의 존재론에 대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다.

『오늘날의 애니미즘』 전자책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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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 이후에 들려온 동네서점들의 하소연. 밀려드는 주문에도 불구하고 동네서점들은 한강 작가의 책을 구할 수가 없다고 하지요. 도매에 도서를 주문한 이후 일주일이 넘게 지난 지금에서야 종당 몇 부.... 소량을 받고 있다고 하네요. 반면 언론 보도에 의하면 수상 소식 이후 한강 작가의 책 판매량은 100만 부가 넘어섰다고 하지요. 이 책들은 대부분 대형서점과 쿠팡 같은 곳에 우선 공급되는 듯합니다. 

이 극명한 차이가 너무나 씁쓸합니다. 대기업들은 막강한 협상력으로 책을 쓸어가고, 동네서점은 언제 몇 부를 받을 수 있는지조차 알 길이 없고. 

잠깐 딴 얘기를 적자면. 저는 포도밭출판사 편집자이지만 북디자이너로도 일하고 있는데요. 며칠 전 우연찮게 십수 년 전 기억이 떠올랐어요. 오래 전 독일 도서전 출장이 생각났습니다. 당시 독일 도서전과 서점을 다니며 책 구경을 열심히 했었는데, 곱고 세련된 책들을 보며 많이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어요. 독일에서 본 북디자인과 한국의 북디자인은 특히 다양성에서 차이가 있었습니다. 무슨 차이일까... 왜 다를까... 이 생각을 오랫동안 했더랬죠.

그런데 5, 6년 전부터 무얼 느꼈냐면, 한국의 북디자인도 정말 다양해지고 있다는 사실. 예전(제가 일을 시작한 20년 전부터 2010년대까지만 해도)에는 아무래도 광고 느낌의 북디자인이 대세였다고 기억하는데요. 최근 몇 년 전부터는 광고 양식에서 벗어난 여러 표현형을 자주 볼 수 있게 되었어요. 그래서 또 생각해봤어요. 이러한 변화의 이유는 뭘까... 그사이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더라...

북디자인의 표현형이 다양해진 큰 이유는, 다양한 그라운드의 책들이 더 많이 나타난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아트북, 진(Zine), 포스터 작업 등이 북디자인에 많은 영향을 줬다고 생각해요. 그럼 과거와 달리 저러한 책들을 우리가 자주 접하게 된 이유는 뭘까. 여러 이유를 꼽을 수 있겠지만 주요한 이유는 동네서점들의 활약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동네서점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정말 열심히 활약한 덕분에 책 문화가 훨씬 두툼해졌어요. 판매가 잘 되지 않더라도 개성 있는 책, 고유한 책들을 동네서점에서 많이 환영하며 소개해주었으니까요. 이 책들을 취급해주는 동네서점들이 없었다면, 책을 기획할 때도 '상업성 있느냐' '경쟁력 있느냐' 같은 것만을 맹렬하게 따지는 상황이 더욱 심화되었을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기여를 하는 동네서점들이 차별당하지 않게 하는 시스템은 여전히 전무한 것 같습니다. 생각할수록 열받아요. 지금 사태는 일방적인 상업주의가 여러 생산자-독자들이 오랜 시간 가꿔온 책 문화를 한순간에 무시하고 배척하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배타적으로 독점 행위를 하잖아요. 이를 방치하는 출판사에도 화가 나고요. 대기업도 다들 자기 장사하는 거니까 문제 없다고 봐줄 게 아니라 명백히 공정 거래 관행 위반인 거죠. 가만 보면 공정 거래 관행은 기득권에서 가장 먼저 내다버리는 것 같아요. 어엇, 첫 호에 이렇게 열을 올릴 생각이 아니었는데... 전혀 아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