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15일)에 채효정 선생님이 옥천에 오셨습니다. 옥천의 사회적기업 고래실에서 주최한 ‘기후강좌’의 강연자로 오신 거지요. 채효정 선생님은 정치학자이고 포도밭출판사에서 2021년에 펴낸 『먼지의 말』의 저자이기도 해요. 저는 멀리 강원도 인제에서 옥천까지 오는 효정 샘을 만나려고 도착 시간에 맞춰 역으로 마중나갔습니다. 옥천 시내를 한바퀴 돌며 짧게 시내 구경을 하고 밥을 먹으러 갔지요. 구읍에 있는 ‘옥두맛집’이라는 식당. 채식하는 친구들이 옥천에 오면 잘 가는 곳이에요. 배추전과 시래기 조림이 엄청 맛있는 곳.

옥두맛집이라는 이름은 ‘옥천에서 두 번째로 맛있는 집’의 줄임말인데, 언젠가 식당 주인께 여쭤봤었죠. 그럼 옥천에서 첫 번째로 맛있는 식당은 어디인지… 식당 주인께서는 이런 질문을 지겹게 들었을 테지만 그래도 친절하게 대답해주었죠. “우리가 진짜 2등이라는 뜻은 아니고, 충청도의 겸양이랄까…. 실은 우리가 1등이지.” 그 말씀을 듣고 시원하게 웃었던 기억이. 옥두맛집 정말 맛있습니다.

식당 앞에 도착하자 승우 형이 뿅 하고 나타났죠. 옥천에서 이웃으로 산 지 10년이 된 하승우 선생님. 하승우 선생님과는 『국가 없는 사회』 『껍데기 민주주의』 『정치의 약속』을 포도밭출판사에서 함께 만들었지요. 뚜벅이인 그는 우리가 차를 가지고 집앞으로 데리러 가겠다는데도 굳이 사양하고 구읍까지 걸어서 오겠다고 하더니 결국 우리보다도 일찍 식당에 도착.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풀면서 옥천에서 두 번째로 맛있는 음식들을 먹었습니다.

저녁에 열린 기후강좌에서는 채효정 선생님에게 ‘기후위기 시대의 역학을 이해하기 위한 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금 왜 이렇게 되었나를 알려면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기에. 

효정 샘은 ‘1945년 상황’과 ‘1990년 상황’을 살펴보는 게 특히 중요하다면서 각 시기의 특징을 이야기했죠. 1945년부터는 산업자본주의의 확산 시기. 1990년대는 금융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가 확산하며 이른바 ‘대가속’이 이뤄진 시기. 먼저 1945년의 세계사를 살펴보면 산업자본주의가 어떻게 몸집을 키웠고, 어떠한 사회적 반동을 겪었으며, 그 반동 및 각성을 자본세력이 어떤 식으로 다시 흡수했는지 알 수 있는데, 1990년대 금융자본주의 및 신자유주의의 세력화와 대가속의 진행에서도 그 과정이 되풀이된다는 것이 요지.

그래서 강좌에서는 1945년에 시작된 산업자본주의 가속, 반동, 각성, 그리고 반동과 각성까지 흡수하는 자본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들었고요. 그다음으로 1990년대부터의 (반복적인) 흐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역사는 이렇게 반복되는구나 싶었고, 세부사항을 다 옮겨 적을 수 없을 정도로 촘촘한 이야기였어요.

그런데 반복이면서 차이가 있지요. 1945년 체제에서는 가속, 반동, 각성이 직접적이었다면 1990년 체제에서는 이 과정에 외주화된 매개들이 등장하는 차이. 제가 강연 내용을 거칠게나마 요약하자면,   

1. 1945년 체제
1) 신자유주의 확산 : 서구자본주의와 똑같은 체제를 전 세계에 확산 
2) 노동생산시대 : 노동자를 재생산에 투입하기 위해서 때론 쉬게도 하고… 교육도 시키고…
3) 복구 경제, 식민지 경제, 차별 경제 : 이때의 고도 성장은 세계전쟁 덕분.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곳을 복구하며 수익 창출. 또한 식민지 착취로 경제 성장. 여성과 인종에 대한 차별 기반.      
4) 반동 흐름 : 보수주의적 반동 (레이건, 대처…) 
5) 각성 흐름 : 68년대 각성기. 굉장히 급진적이고 변혁적인 대중사회운동.
6) 각성에 대한 압력 : 80년대 근대화론(성장할수록 민주화된다. 그러니 성장 추구해야 한다는 논리) 
7) 반동과 각성을 흡수하는 자본의 전략 : 자본 전략 중 하나는 NGO를 등장시키는 것.노사정 체제 안에 ngo를 침투시킴. 대표적인 사례가 그라민은행. 그라민은행=착한 가면을 쓴 착취.

2. 1990년 체제
1) 금융자본주의 확산 : 금융자본=기회자본, 정보통신 기술로 확대
2) 기술생산시대 : 재생산 투입을 위해 노동력을 기다리거나 교육할 필요 없어짐. 대신 재생산 가속을 위해 물건을 빨리 폐기하도록. 생산물 수명 관리.
3) 부채 경제 : 부채 생산을 통한 수익 창출.
4) 반동 흐름 : 사민주의 자유주의적 반동 (클린턴, 노무현, 만델라…) 
5) 각성 흐름 : 90년대 각성기. 앞서 68년 각성이 대중사회운동 맥락으로 전개되었다면 90년대 각성 흐름은 외주화된 각성. 엄청 많은 협약이 생김. 글로벌 차원의 기후환경 어젠다 협의 체결. 각성 흐름은 국가간 협의로 한원.  
6) 각성에 대한 압력 : 90년대 생태적현대화론(성장할수록 생태적으로 현대화한다. 그러니 성장 추구해야 한다는 논리) 
7) 기후위기에 대한 자본의 전략 : 기후 ngo가 등장하기 시작. 녹색성장이라는 프레임으로 상징폭력 수행. 

강연의 초반부에 이렇게 두 시대를 비교하며 자본주의 가속의 역사를 살펴봤지요. 효정 샘은 후반부로 이어지기 전 중간에 재밌는 얘기를 하셨는데, 금융사 특히 보험회사에서도 이런 식으로 자본주의 공부를 엄청 열심히 한다고 하더라고요. 왜냐. 자본도 자본주의를 잘 알아야 생존 전략을 수립하니까요. 

효정 샘은 지금이 꼭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 전간기와 흐름이 유사하다고. 정치적으로는 새로운 반동기에 와 있죠.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동의 감정들이 커져가는 상황. ‘자유’ 시대를 30년 가량 살아보니까 이제 자유가 싫어. 뭐든 개방하고서 문턱 없이 모험하라면서 세계를 열어놨는데 이제 개방과 모험은 오히려 불안하고 우리를 더 취약하게 만들고. 이제는 안정적으로 살고 싶어…. 이런 마음들이 커지는 상황. 개방, 모험, 자유 같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구호들에 대한 반동이 자라고 있죠. 

그러면서 안정, 통제, 질서 같은 요구들이 올라오는데 이 요구들을 낚아채 자신들의 세력화에 이용하는 것이 지금의 극우 보수주의. 트럼프가 딱 그렇게 하고 있죠. 내부를 설정하고 외부인 약자와 소수자를 통제해서 사회 안전을 확보하고 질서를 지키겠다는 식으로. 

기후정치에도 이런 흐름이 재현되고 있고요. 효정 샘은 기후에 대한 염려와 실천을 반동적으로 낚아채는 정치적 흐름으로 크게 두 가지 맥락을 말했어요.

  

1. 트럼프, 윤석열식 : 기후문제를 대상화하고 정체성, 인종, 계급 문제 등으로 갈라치기하면서 이중에 약자를 통제해 사회 안전을 확보하겠다는 식.        
2. EU, 바이든, 중국식 : 뭔가 바꾸려는 듯이 말하기는 하는데 사실 바꿀 생각 없고 실상은 기후위기를 산업적으로 이용할 생각만 하는 식.  

기후정치의 양상을 보면 뭐가 더 최악인지 가리기 힘들 정도로 둘다 최악이죠. 그런데 기후정치가 최악이라는 사실이 낳는 악화의 하나는 이로 인한 민중들의 백래시. 기후정치의 저런 꼴을 보고 있자니 ‘기후’ 얘기하는 사람 전체에 염증을 느끼게 된다는 거죠. 어떤 면에서는 그럴 수밖에요. 누군가 ‘기후’를 말할 때 그 본질이 기후 위기를 내새워 분열을 조장하고 권력을 얻을 생각이거나 ‘기후’ 불안을 부추겨 수익을 창출할 생각이라는 걸 모를 수 없으니까요. 그렇게 자신들을 수단화하는 권력자, 자본가 및 엘리트 정치인들이 여기저기 깔려 있는 상황에서 ‘기후’ 소리를 꺼내는 사람들이 죄다 의심스러울 수밖에. 그래서 최악의 기후정치에 백래시까지. 그것이 오늘날의 현실이 된 거죠.

여기서 지금이 양차 세계대전 사이 전간기 같다는 효정 샘 말을 다시 생각하게 돼요. 파시즘적 사태가 일어나기 전의 분열 상황. 보호, 안전, 통제에 대한 요구가 커진다는 건 파시즘이 도래할 수 있는 위험 신호이니까. 

그래서 우리는 무얼 해야 할까요. 저는 강연을 듣고 집에 돌아와서도 그런 고민을 잔뜩 하게 되더라고요. 일단은 보고 싶었던 영화, 미루고 아껴두었던 영화를 한 편 봤어요. 켄 로치 감독의 <나의 올드 오크>. 영화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중요한 건 무언가를 함께 한다는 거야.”